article · 2026-06-10

클릭이 사라지면 마케터는 무엇이 되는가: 인지 설계자에서 데이터 엔지니어로

트렌드 신호를 모으는 도구를 만들다가, 그게 사실 마케터의 판단을 데이터 파이프라인으로 옮긴 행위였음을 깨달았다. non-click 퍼널이 유저 여정을 지우면서, 마케터의 craft는 인간 인지·유저플로우 설계에서 머신 가독성·인용·임프레션을 다루는 데이터 엔지니어링으로 옮겨간다. '의미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도피처조차 안전하지 않다.

요약

트렌드 신호를 모으는 작은 도구(trend-radar)를 만들었다. RSS·arXiv·뉴스레터에서 떠오르는 신호를 긁어 "여기에 주목하라"를 브리핑으로 내놓는 레이더다. 그런데 만들고 나서 깨달았다. 이건 원래 마케터가 감과 판단으로 하던 일(무엇이 뜨는가, 무엇이 중요한가)을, 점수 매기는 데이터 파이프라인으로 옮긴 것이었다. 내가 한 행위 자체가, 지금 마케터에게 일어나는 일의 축소판이었다.

그 레이더가 잡아온 두 신호가 그 변화를 정면으로 가리킨다. 하나는 Seth Godin의 역할 재정의(요약자에서 의미 부여자로), 또 하나는 non-click 퍼널. 지난주에 또 화두였다. 둘을 합치면 불편한 그림이 나온다. 클릭이 사라지면 마케터가 설계하던 유저 여정 자체가 사라지고, 남은 craft는 인간 인지가 아니라 데이터 엔지니어링으로 옮겨간다. "의미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위안조차 안전한 고지가 아니다.


1. 레이더가 잡은 두 신호, 그리고 그게 가리킨 내 행위

trend-radar를 만든 이유는 단순했다. 트렌드를 보려고 LinkedIn 인기 글을 긁고 싶었는데 API로는 막혀 있었다. 그래서 인기 글 대신, 그 글이 만들어지기 전의 상류 신호(RSS·arXiv·뉴스레터)를 잡기로 했다.

marketing 트랙에 처음 돌렸더니 두 신호가 위로 올라왔다. Answer Engine과 AI Slop이 전체의 약 78%였고, 그 옆에서 non-click 퍼널이 또 떠올랐다. "또"가 중요하다. 지난주에도 화두였다. 한 번 뜨고 마는 유행이 아니라 반복해서 올라오는 신호라는 건, 단기 트렌드가 아니라 구조 변화라는 뜻이다.

그런데 정작 나를 멈칫하게 한 건 신호 자체가 아니라, 내가 이 도구를 만든 방식이었다. 트렌드 모니터링은 원래 마케터가 머릿속에서 하던 인지 작업이다. 무엇이 뜨고, 무엇이 중요하고, 어디에 주목할지. 나는 그걸 emergence_score = acceleration × lead_ratio라는 공식으로 바꿔 파이프라인에 박았다. 판단을 데이터로 옮긴 것이다. 마케터의 일을 데이터 엔지니어링으로 번역하는 작업을, 나는 이미 내 손으로 하고 있었다.


2. 클릭이 사라지면 유저플로우도 사라진다

이 변화가 가장 날카롭게 닿는 건 콘텐츠 마케터가 아니라 그로스·퍼포먼스 마케터다. 그들의 정체성은 늘 데이터 위에 있었다. 다만 그 데이터는 인간 행동에 관한 것이었다. 클릭률, 전환율, 코호트, 퍼널 이탈 지점. 인지 → 관심 → 욕구 → 행동이라는 퍼널은, 사람이 어떻게 페이지를 보고 어디서 망설이고 무엇에 클릭하는지를 측정하고 그 여정을 설계하는 기술이었다. 그로스 마케터는 원래 엔지니어에 가까웠다. 단, 그가 다루던 데이터의 대상은 어디까지나 사람이었다.

non-click 퍼널은 그 craft의 핵심 전제를 빼버린다. 사용자가 AI 답변 안에서 답을 얻고 클릭하지 않는다. 클릭이 없으면 랜딩 페이지 방문이 없고, 방문이 없으면 설계할 온사이트 여정이 없다. 영향력은 내 페이지 위가 아니라 AI의 요약 안에서 일어난다. 그로스 마케터가 갈고닦은 "퍼널·유저플로우 최적화"라는 기술은, 최적화할 플로우가 사라지면서 갈 곳을 잃는다.

여기서 craft가 증발하는 게 아니라 이동한다. 사람의 여정을 설계하던 자리에, 기계의 섭취를 설계하는 일이 들어선다.

  • 사람이 읽기 좋은 페이지 → 기계가 인용하기 좋은 구조화 데이터
  • 클릭을 유도하는 카피 → 답변에 인용될 만한 출처 신뢰도
  • 방문·체류·전환 추적 → 답변엔진별 임프레션·인용 계측

이게 같은 시기에 측정 인프라가 움직인 이유다. Google Search Console에 Search Generative AI performance reports가 추가됐다(2026-06-03). AI Overviews·AI Mode에서 내 URL이 얼마나 노출되는지를 보여주는데, 결정적으로 클릭 데이터가 없다. 노출만 보이고 클릭은 안 보인다. 미완성이 아니라 신호다. 측정의 단위가 클릭(인간 행동)에서 임프레션(기계 노출)으로 내려앉았다는 뜻이다.

종합하면, 데이터의 대상이 바뀐다. 인간 행동을 측정하던 데이터가, 기계의 섭취를 설계하는 데이터로 옮겨간다. 그로스 마케터는 늘 엔지니어였지만, 이제 그가 최적화하는 대상이 사람의 클릭에서 기계의 인용으로 이동한다. 퍼포먼스 마케팅의 정체성이 인간 행동 데이터에서 머신 가시성 엔지니어링으로 가까워지는 것이다. 이게 non-click 퍼널이 파생시키는 정체성 이동이다.


3. 그렇다고 '의미'가 안전지대인 것도 아니다

여기서 흔한 위안이 등장한다. Seth Godin의 역할 재정의가 그 위안의 정전이다. Art is a verb(예술은 동사다. 변화를 못 일으키는 산출물은 장식일 뿐)과 Marketing clerks(직함만 마케터인 사람 다수는 실은 행정 처리자다. 진짜 권한은 결정하는 사람에게 있다). 둘을 합치면 결론은 분명하다. AI가 먼저 자동화하는 건 clerk의 일(요약·정리·전달)이고, 마지막까지 못 자동화하는 건 의미를 부여하고 결정하는 일이다. 그러니 위로 올라가라, 요약자에서 의미 부여자로. 누구도 대신 못 쓰는 "고유한 한 줄"을 만들어라.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 위안은 절반만 맞다. 의미 부여자라는 고지도 압박을 받는다.

  • 의미마저 최적화 타깃이 된다. "요약을 견뎌내는 의미"는 곧 "AI가 인용할 만한 의미"로 번역된다. 의미를 만들라는 요구조차, 머신 가독성이라는 데이터 목표로 빨려 들어간다.
  • 모두가 같은 플레이북을 쓰면 의미도 균질해진다. 이게 AI Slop이다. 기술적으로 맞지만 창의적으로 빈 콘텐츠의 홍수. 모두가 같은 AEO 플레이북으로 "차별화된 의미"를 찍어내면, 그 의미도 결국 장식이 된다.
  • 측정이 의미를 끌어내린다. 임프레션이라는 측정 가능한 지표가 생기면, 사람들은 거기에 최적화한다. Goodhart's Law다. 측정 가능한 것(임프레션)에 모두 최적화하면, 측정 안 되는 것(진짜 의미)이 오히려 희소해지지만, 동시에 "의미 만들기"라는 활동도 임프레션을 향한 엔지니어링으로 끌려간다.

그래서 정직한 그림은 "사람은 의미로 올라가 안전해진다"가 아니다. 마케터의 정체성은 둘로 갈라진다. 위로는 의미 부여자(여전히 인간의 몫이되 압박받는), 옆으로는 데이터 엔지니어(빠르게 커지는). 그리고 그 사이, 20년간 핵심이었던 인간 여정 설계가 가장 빠르게 얇아진다.


4. 시사점: 자동화는 인간을 깨끗하게 대체하지 않는다

내 관심은 마케팅 KPI가 아니라 에이전트가 인간 역할을 어디서 대체하는가다. 이번 신호의 교훈은, 그 대체가 우리가 기대한 것처럼 깨끗하지 않다는 것이다.

흔한 그림은 단순하다. 기계가 기계적인 일(clerk)을 가져가고, 사람은 인간적인 일(meaning)에 남는다. 깔끔하고, 위안이 된다. 그런데 non-click 퍼널이 보여주는 현실은 더 비틀려 있다. 인간적이라 믿었던 craft(사람을 이해하고 여정을 설계하는 일)가 오히려 먼저 대체되고, 그 자리를 데이터 엔지니어링이라는 새 기술이 채운다. 사람에게 남은 일조차 "더 인간적인 일"이 아니라 "더 엔지니어링에 가까운 일"일 수 있다.

  1. 자동화의 경계는 '요약 가능성'에 있다. 요약 가능한 일은 사라지고 요약을 견디는 일은 남는다. 다만 "요약을 견디는 일"이 곧 "인간적인 일"인 건 아니다. 그것은 의미 부여일 수도, 머신 가독성 엔지니어링일 수도 있다.

  2. 인간의 craft는 보존되지 않고 재숙련(re-skill)된다. 인지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자리를 옮긴다. "페이지 위 여정을 어떻게 설계하나"에서 "AI 요약 안에서 무엇이 브랜드를 기억에 남기나"로. 같은 인지 능력이 다른 표면 위에서 다시 쓰인다. 그 표면이 데이터다.

  3. 도구를 만드는 일은 그 경계선을 긋는 일이다. 나는 trend-radar에서 마케터의 판단 과제를 점수 공식으로 엔지니어링했고(데이터로 옮긴 부분), 무엇에 베팅할지는 사람에게 남겼다(자동 인계 없음). 둘 다 내가 그은 선이다. 좋은 에이전트를 만드는 일은 똑똑한 모델을 고르는 일이 아니라, 무엇을 데이터로 옮기고 무엇을 사람에게 남길지 그 선을 정확히 긋는 일에 가깝다.

그리고 이 글 자체가 그 증거다. 이 글도 상당 부분 AI로 썼다. 초안, 구조, 표현의 다수가 모델의 산출물이다. 하지만 무엇을 말할지, 어떤 순서로 꿸지, 어디에 날을 세울지는 내가 매번 되돌려보내 다시 잡아야 했다. AI는 요약과 초안(clerk의 일)을 빠르게 해냈지만, 내러티브의 방향은 사람의 가이드 없이는 서지 않았다. "non-click 퍼널을 데이터 엔지니어링 정체성 이동으로 읽자"는 그 한 줄은 모델이 먼저 주지 않았다. 자동화가 사람을 대체하지 못한 자리가 정확히 거기, 의미와 내러티브의 판단이었다. 이 글을 쓰는 과정이 곧 이 글의 주장이었다.

trend-radar는 작은 도구다. 하지만 그걸 만들면서, 또 이 글을 쓰면서 나는 마케터에게 일어나는 일을 내 손으로 두 번 겪었다. 요약·초안·정렬은 기계로 옮기고, 무엇을 말할지·무엇에 베팅할지는 사람이 쥐는 일. non-click 퍼널이 마케터 전체에게 던지는 질문도 같다. 클릭이 사라진 자리에서, 당신의 craft 중 무엇이 데이터로 옮겨가고 무엇이 끝까지 사람의 것으로 남는가.

한 문장 요약. AI 검색이 클릭을 지우면 그로스·퍼포먼스 마케터의 정체성은 둘로 갈라진다. 위로는 압박받는 의미 부여자, 옆으로는 빠르게 커지는 데이터 엔지니어. 그 사이에서 가장 빨리 얇아지는 건, 20년간 핵심이라 믿었던 인간 여정 설계다. 자동화는 인간을 깨끗하게 대체하지 않는다. 인간의 craft를 재숙련시킨다. 이 글이 그랬듯, 요약과 초안은 기계가 하고 내러티브의 방향은 사람이 잡는다.


근거

  • 도구: trend-radar (Exploratory 신호 레이어). RSS 상류 신호 우회 포착 / emergence_score = acceleration × lead_ratio(판단의 데이터화) / "선택은 사람이 한다"(자동 인계 없음).
  • 신호 출발점: trend-radar marketing 트랙 2026-06-10 브리프(Answer Engine + AI Slop 약 78%) + non-click 퍼널(지난주에 이어 반복 등장 → 구조 신호).
  • Seth Godin (2026). Art is a verb · Marketing clerks.
  • Google Search Central (2026-06-03). Introducing Search Generative AI performance reports in Search Console. (클릭 데이터 미포함 → 측정 단위가 클릭에서 임프레션으로.)
  • 확장 근거: Heinz Marketing Anti-AI Opportunity for B2B · CXL AEO guide 2026 · PPC Land·Search Engine Journal(SGE 리포트 교차 확인).

작성 메모: SGE 리포트 수치·롤아웃은 2차 출처 교차 확인분이며 발행 전 Google 공식 본문 대조 권장. "non-click 퍼널"은 브리프 신호 레벨의 관찰(반복 등장)로 다뤘고, 특정 통계로 단정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