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note · 2026-05-26

내가 바라본 주가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에 가까웠다

사업 전략이라는 게 기업에 대한 투자가치 분석과 비슷하다고 느낀 적이 있다. 한때 국내와 미국의 상장사를 대상으로, AI로 기업의 투자가치를 분석해보자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 지금은 종료됐고, 시간이 꽤 지나 이제야 썰처럼 풀 수 있게 됐다. 그 프로젝트에서 기억에 남는 건 숫자나 지표 자체가 아니었다. 벨류체인

내가 바라본 주가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에 가까웠다

사업 전략이라는 게 기업에 대한 투자가치 분석과 비슷하다고 느낀 적이 있다.

한때 국내와 미국의 상장사를 대상으로, AI로 기업의 투자가치를 분석해보자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 지금은 종료됐고, 시간이 꽤 지나 이제야 썰처럼 풀 수 있게 됐다.

그 프로젝트에서 기억에 남는 건 숫자나 지표 자체가 아니었다. 벨류체인을 발굴하는 일, 그리고 같은 사건이 시장마다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는 사실이었다.

처음에는 이걸 데이터의 부족이나 모델 성능의 한계로 생각했다. 그런데 오래 들여다볼수록 다른 결론에 가까워졌다.

문제는 fact가 아니었다.
문제는 semantic이었다.


같은 이벤트인데, 왜 시장은 다르게 반응하는가

예를 들어 CEO 교체 이벤트를 생각해보자.

표면적으로는 단순하다. 한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바뀌었다. 이건 사실(fact)이다.

그런데 투자 판단은 그 fact에서 바로 나오지 않는다.
그 사이에는 반드시 하나의 층이 더 있다.
바로 이 사건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해석하는 semantic layer다.

미국 상장사의 CEO는 대체로 기업의 주인이라기보다, 성과를 위임받은 경영자에 가깝다. 주주 가치와 시장 기대, 공개적 평가가 강하게 작동하는 구조 안에 놓여 있다. 성장이 정체되거나 주가 하락이 이어질 때 CEO 교체는 종종 “쇄신”의 신호로 읽힌다. 승계 계획, 지배구조, 시장 커뮤니케이션이 함께 붙으면 그 신호는 더 강해진다.

한국은 다르게 해석해야한다. CEO가 오너십과 더 강하게 결합해 있는 경우가 많고, 투자자들이 읽는 신호도 기업 구조의 리셋보다는 권력구조, 인물의 안목, 후계 질서, 혹은 내부 균형 쪽으로 기운다. 같은 CEO 교체라도 미국에서는 전략적 리프레시로, 한국에서는 오히려 불확실성으로 읽힐 수 있다.

즉 사건은 같아도 해석은 달라야한다.

이 차이를 보고 나서야 나는 투자가치 분석이 단순한 데이터 처리 문제가 아니라는 걸 더 분명히 느꼈다.
가치판단은 fact를 읽는 일이 아니라, fact와 decision 사이의 semantic layer를 해석하는 일이다.


주가를 움직이는 건 기술보다 욕망이었다

프로젝트를 하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시장이 기술보다 더 깊게 반응하는 것이 따로 있다는 점이었다.

어떤 산업에서든 벨류체인을 정리해 보면, 결국 사람들의 기대와 두려움, 탐욕과 불안, 신뢰와 회의가 어디서 증폭되는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공급망 이슈, 규제 변화, CEO 교체, 제품 실패, 신사업 진출 같은 이벤트는 모두 겉으로는 동일한 형태의 fact처럼 보이지만, 실제 시장에서는 감정과 욕망이 부착된 semantic event로 작동한다.

그래서 같은 실적 발표도 어떤 시장에서는 “턴어라운드의 시작”으로 읽히고, 어떤 시장에서는 “숫자는 좋지만 못 믿겠다”로 읽힌다. 같은 신사업 투자도 어떤 곳에서는 장기 성장의 신호가 되고, 어떤 곳에서는 무리한 확장의 신호가 된다.

그때 내가 느낀 건 단순했다.

내가 바라본 주가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에 가까웠다.

가격은 숫자지만, 그 숫자를 움직이는 건 종종 정서다.
그리고 정서는 사회적 현상을 만든다.


그래서 투자판단 자동화는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이 지점에서 AI 이야기가 나온다.

겉보기에는 이 문제를 AI가 잘할 것처럼 보인다.
상장사 공시를 읽고, 뉴스 이벤트를 추출하고, 유사 사례를 모으고, 밸류체인과 지배구조를 정리하고, 패턴을 비교하는 일. 이런 작업은 이미 AI가 상당 부분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

실제로 반복적인 판단 과업은 앞으로도 더 많이 자동화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구분이 있다.
AI가 잘하는 것은 fact를 수집하고 구조화하는 일이다.
문제가 어려워지는 건 그 다음부터다.

같은 fact를 어떤 맥락에서 읽을지,
어떤 관계를 foreground로 올릴지,
무엇을 기회로 보고 무엇을 리스크로 볼지,
어떤 정서를 “시장 합리성”의 일부로 인정할지.

이건 이미 단순한 정보 추출이 아니라 semantic framing의 문제다.
그리고 semantic framing은 곧 downstream decision을 기울게 만든다.

같은 데이터라도 어떤 frame 안에 놓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판단이 나온다.
투자 판단 자동화의 어려움은 모델이 수치를 못 읽어서가 아니라,
모델이 의미를 너무 쉽게 하나의 해석으로 고정해버릴 수 있다는 데 있다.


“여긴 한국이야”를 알아듣게 해야 한다

이 문제는 frontier model의 문화적 기본값과도 연결된다.

지금 많이 쓰이는 AI 프론티어 모델은 대부분 미국에서 만들어졌고, 미국어로 평가되고, 미국식 공개시장 맥락과 문화적 상식을 배경으로 자라왔다. 모델이 강력하다는 사실과, 그 모델이 지역적 맥락을 자연스럽게 이해한다는 사실은 전혀 다르다.

한국에서 실제 업무에 적용해보면 금방 드러난다.
그냥 번역한다고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중요한 건 “여긴 한국이야”를 알아듣게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 자본시장에서 기업 오너십이 갖는 의미,
국내 개인투자자의 반응 구조,
조직과 권력, 대중적 신뢰, 리더십 교체의 상징성이 어떻게 읽히는지 같은 것들은 미국식 기본값 위에서는 제대로 포착되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localization은 단순한 언어 현지화가 아니다.
실제로는 해석 규칙의 현지화, 다시 말해 grounding 보정에 더 가깝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산업별 차이, 기업 단계별 차이, 도메인별 차이까지 들어오면, localization은 곧 방대한 semantic tuning 문제가 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AI를 많이 쓸수록 지역적 특색은 사라질 수도 있다

여기에는 더 묘한 역설도 있다.

LLM을 많이 사용하는 사람일수록, 쓰는 글에서 지역적 특색이 점점 옅어진다는 느낌이 있다. 문장은 더 매끈해지고, 구조는 더 보편화되고, 표현은 더 평균값에 가까워진다. 그 과정에서 각 시장이 가진 고유한 정서와 맥락 단서는 조금씩 희석된다.

이건 단순한 스타일 변화가 아니다.
넓게 보면 semantic drift에 가깝다.

업무 언어가 점점 더 평균적인 모델 언어로 수렴하면, 시장과 현장의 실제 해석 규칙을 담아내는 능력도 함께 약해질 수 있다. AI는 관리하지 않으면 성능이 후퇴한다는 말을 보통 모델 품질 차원에서 이해하지만, 실제로는 맥락 해석 능력의 후퇴도 포함되어야 한다.

즉 AI는 업무를 표준화하는 동시에,
그 업무가 속한 시장의 정서를 지워버릴 수도 있다.


Agent에게 넘길 수 있는 것과 넘길 수 없는 것

Agentic AI가 복잡해질 거라는 건 알고 있다.
구매 의사결정권의 일부가 Agent에게 넘어갈 것이라는 것도 안다.
정보 수집, 후보 비교, 기준별 점수화, 시나리오 압축, 반복 판정. 이런 것들은 점점 더 Agent가 맡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정말로 가치 판단(value judgment) 까지 이관할 수 있을까?

나는 아직 그 질문 앞에서 쉽게 낙관하기 어렵다.

어떤 판단은 rubric으로 정리할 수 있다.
사실 사람도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미리 평가지를 만든다.
LLM-as-Judge 같은 기법은 그 평가지를 따라 텍스트를 꽤 안정적으로 판정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도 차이는 남는다.

평가지를 따라서 일하는 사람은 대체되기 쉽다.
반면 평가지를 만드는 사람은 대체되기 어렵다.

무엇을 평가할지,
무엇을 변수로 둘지,
어떤 편향을 보정할지,
어떤 예외를 허용할지,
어떤 사건을 사실이 아니라 신호로 읽을지.

이건 여전히 더 상위의 의미 설계 문제다.


결국 남는 질문

사업 전략이든 투자 판단이든, 겉으로 보면 숫자의 문제처럼 보일 때가 많다.
하지만 오래 들여다볼수록 숫자는 결과에 가깝고, 그 이전에는 늘 사람들의 기대, 불안, 신뢰, 체면, 욕망이 있었다.

AI는 그 표면을 아주 빠르게 읽을 것이다.
아마 인간보다 더 빠르게 fact를 모으고, 구조화하고, 비교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AI가 가치판단의 주체가 된다는 뜻은 아니다.

가치판단은 여전히
무엇이 사실인지보다
그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묻는 일에 가깝다.

그리고 그 의미는 언제나
시장의 구조와 문화, 사람의 욕망 속에서 만들어진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바라본 주가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에 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