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alytical · 2026-05-19

머릿속에 작은 온톨로지 깔기 — AI 기획자가 시험 중인 Agentic Marketing 인지 설계

저는 디자이너로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사용자가 다음 화면에서 무엇을 보게 될지 예측할 수 있도록 시각 위계, 인터랙션, 정보 구조를 설계하는 일이었습니다. 다음으로 옮긴 AI 기획에서는 같은 작업이 다른 객체를 향합니다. 에이전트가 다음 행동을 추론할 수 있도록 개념 관계를 온톨로지로 설계하는 일. 객체가 사람에서 에이

머릿속에 작은 온톨로지 깔기 - AI 기획자가 시험 중인 Agentic Marketing 인지 설계


왜 이 글을 쓰는가

저는 디자이너로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사용자가 다음 화면에서 무엇을 보게 될지 예측할 수 있도록 시각 위계, 인터랙션, 정보 구조를 설계하는 일이었습니다.

다음으로 옮긴 AI 기획에서는 같은 작업이 다른 객체를 향합니다. 에이전트가 다음 행동을 추론할 수 있도록 개념 관계를 온톨로지로 설계하는 일. 객체가 사람에서 에이전트로 바뀌었을 뿐, 다음 단계를 예측 가능하게 만드는 인지 구조의 설계라는 본질은 동일합니다

요즘 두드려보는 영역이 하나 더 늘었습니다. Agentic Marketing입니다. "AI 에이전트가 사람을 대신해 후보를 좁히는 환경에서 마케팅이라는 활동의 작업 표면이 어디로 옮겨가는가"라는 질문 위에서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가장 일찍 부딪힌 사실은 단순합니다. 기존의 마케팅 도구가 잘 맞지 않는다는 점. 광고 카피, 캠페인 설계, 키워드 정렬은 한 가지 가정 위에서 작동했습니다. 최종 결정자가 사람이고, 사람은 노출이 더해질수록 결정에 가까워진다는 가정. 에이전트는 이 두 가정 모두에서 다르게 움직입니다.

본업의 렌즈로 마케팅을 다시 보면 어떤 모양이 될까. 이 글은 그 시도의 메모입니다.


옛 도구가 잘 안 맞는다 - 무엇이 바뀌었나

옛 마케팅에는 한 가지 안정적인 가정이 있었습니다. 사용자의 니즈는 천천히 발현되고, 마케팅의 일은 그 발현된 니즈를 가로채는 것이라는 가정. 광고도 SEO도 길목에 서는 일이었고, 길목의 정의는 수년 단위로만 바뀌었습니다.

지금은 두 가지가 동시에 바뀌고 있습니다.

하나, 카테고리의 생성 주기가 너무 빨라졌습니다. 새 카테고리가 일주일 단위로 등장하고, 한 달 안에 자리를 잡지 못한 것은 잡음으로 처리됩니다. 니즈가 발현되길 기다리는 동안 그 카테고리는 이미 대체되어 있습니다.

둘, 에이전트가 길목에 먼저 도착합니다. 사용자가 검색창에 무언가를 타이핑하기 전에, 에이전트는 그를 대신해 후보를 좁힙니다. 새 길목은 헤드라인이 아니라 데이터 구조이고, 카피가 아니라 진술의 검증 가능성입니다. 에이전트가 읽는 것은 출처의 권위, 진술의 일관성, 교차 검증 가능성, 도구 호출 적합성. 사람의 인지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차원들입니다.

이 두 변화가 합쳐지면 "발현된 니즈를 가로챈다"는 옛 작업의 자리가 점점 줄어듭니다. 줄어든 자리만큼 새로운 일이 필요합니다.

니즈가 발현되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니즈가 발현될 인지 구조를 먼저 만드는 일.

여기서 제 본업이 들어옵니다. 제가 다뤄온 방식에서의 인지 구조는 설계 대상입니다.


가설: 마케팅은 머릿속에 작은 온톨로지를 까는 일이다

AI 기획에서 온톨로지를 설계할 때 하는 일을 한 줄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새 개념을 어디에 두고, 무엇에 연결하고, 어떤 조건에서 활성화할 것인가를 명시한다. 노드의 위치, 노드 사이의 관계, 활성화 조건. 이 셋이 명확해야 에이전트가 그 개념을 사용합니다. 하나라도 빠지면 그 개념은 그래프 안에 존재하긴 해도 추론에 동원되지 않습니다.

시험 중인 가설은, 사람의 인지에서도 거의 같은 일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머릿속에도 부분 그래프들이 있고, 새 개념은 그 안에 정확한 위치를 잡지 못하면 흘러갑니다. 이론적으로 새로운 개념은 아닙니다. 인지심리학의 스키마 이론, 학습이론의 동화/조절과 겹칩니다. 다만 그 그림을 설계의 언어로 다시 쓴다는 것이 디자인 어휘에 가까운 시도입니다.

마케팅 콘텐츠는 받는 사람의 머릿속에 작은 온톨로지를 깔아주는 일이다. 가치를 먼저 본 새 개념이 있다면, 그것을 상대의 인지 그래프 어디에 둘 것인지, 어떤 노드와 연결할 것인지, 어떤 조건에서 활성화될지를 함께 설계해주는 일.

이 가설은 "더 잘 설명하면 더 잘 전달된다"는 옛 메타포와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정보 전달이 아니라 구조 설치입니다.

학습이론에서 한 줄을 빌려옵니다. 사람은 들은 만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의미가 구성되는 만큼만 배운다(Piaget, Simply Psychology). 의미의 구성 = 인지 그래프 위에 새 노드가 안정적으로 자리잡는 사건이라고 다시 쓰면 가설은 이론적으로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학습이론이 를 설명한다면, 이 가설은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를 묻습니다.

구조 설치는 세 개의 관문을 통과해서 일어납니다.

  1. 후킹: 새 노드를 둘 자리가 열린다.
  2. 이해: 새 노드가 기존 노드에 연결된다.
  3. 체감: 새 노드가 활성화된다.

각 관문은 작동 메커니즘과 무너지는 방식이 다릅니다. 따로 설계합니다.


관문 1 - 후킹: 노드를 둘 자리를 여는 일

첫 단계의 임무는 새 노드를 둘 빈 자리를 인지 그래프에 만드는 일입니다. 자리가 없는 상태에서 노드를 던지면 어디에도 안착하지 못하고 흘러갑니다. 슬롯이 먼저고, 노드는 그다음입니다.

자리가 열리는 조건은 직관과 다릅니다. 시선은 강한 자극에 멈추지 않습니다. 너무 낯선 것은 인지 분포 밖으로 밀려나 noise로 처리되고, 너무 익숙한 것은 그래프가 이미 그 자리를 채워놓고 있어 빈 자리가 안 생깁니다.

자리가 열리는 곳은 그 사이의 좁은 띠입니다. 익숙한 패턴이 80% 맞고 20% 빗나갈 때, 인식은 그 빗나간 자리에 멈춥니다. 그 멈춤이 새 노드를 둘 임시 슬롯을 엽니다. 80/20은 비유적인 수치지만, 핵심은 기존 그래프에 닿아 있되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 자극이라는 점입니다.

학습이론은 이 띠를 ZPD라고 부르고, 머신러닝은 같은 자리를 hard negative라고 부릅니다. 모델이 가장 자신 있게 틀린 예제, "거의 맞는데 어딘가 어긋난 자리"가 가장 큰 gradient를 만듭니다. 사람의 인지와 모델의 가중치는, 새 노드를 받아들이는 자리에서 놀랍도록 같은 위상학을 갖습니다.

후킹의 설계는 "더 강한 자극"이 아니라 "기존 그래프의 미세한 어긋남"을 의도적으로 만드는 작업입니다. 익숙한 문장 구조에 한 단어가 어긋나 있거나, 익숙한 카테고리에 낯선 조합이 끼어 있거나, 기대되는 흐름이 한 박자 늦게 깨지거나. 일하는 사람으로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받는 사람의 그래프를 외부에서 추정하는 일입니다. 추정이 빗나가면 어긋남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후킹의 실패는 자극이 약해서가 아니라, 받는 사람의 그래프가 우리가 가정한 모양과 다르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관문 2 - 이해: 노드를 기존 노드에 연결하는 일

자리가 열렸다고 노드가 그래프에 들어오는 것은 아닙니다. 다음 1초 안에 인지가 던지는 질문이 있습니다. "이게 뭐랑 비슷한 거지."

이 질문은 새 노드가 기존 노드와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묻는 질문입니다. 연결되지 않는 노드는 임시 슬롯에 잠시 떠 있다가 흘러갑니다. 이해는 새 정보를 받아들이는 사건이 아니라, 연결을 만드는 사건입니다.

그래서 추상보다 비유가, 새 용어보다 인접 용어가, 처음 보는 구조보다 익숙한 구조의 변주가 먼저 작동합니다. "X의 Y버전", "A를 위한 B", "C인데 D한 것". 이런 카피 공식이 매번 작동하는 이유는 게으른 카피라서가 아니라, 새 노드를 기존 노드에 거는 가장 짧은 엣지이기 때문입니다.

이 관점은 E-E-A-T(경험·전문성·권위·신뢰) 같은 신호가 검색에서 왜 작동하는지도 다시 설명합니다. 사람의 신뢰 판단은 이미 잘 발달된 부분 그래프를 갖고 있습니다. 누가 신뢰할 만한가, 어떤 출처는 무게가 있는가. E-E-A-T 신호는 새 정보를 그 부분 그래프에 거는 어댑터입니다. 어댑터 없는 정보는 그래프 외부에 떠 있게 되고, 추론에 동원되지 않습니다.

이해 단계의 설계 실수는 거의 항상 같은 형태입니다. 받는 쪽의 그래프를 잘못 추정한 것. "당연히 알 거라고" 가정한 노드가 사실은 그래프에 없거나, "비슷할 거라고" 빌려 쓴 비유가 다른 부분 그래프에 속해 있거나. 한 번의 어긋남으로 연결이 끊깁니다. 이 실수는 설명하는 쪽의 그래프가 너무 발달해 있을 때 더 자주 일어납니다.

자기 그래프에서 자명한 연결이 상대 그래프에는 존재하지 않는 엣지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AI의 in-context learning도 같은 제약을 받습니다. 프롬프트의 예시가 모델의 기존 분포에 닿아 있을 때만 일반화가 일어납니다. 분포에서 멀면 노이즈로 흘려보내거나 hallucination으로 처리됩니다. 사람이든 모델이든 새 노드가 그래프에 안착하려면 기존 그래프에 닿아 있어야 한다는 같은 원리 위에 있습니다.

이해 설계의 핵심은 받는 쪽의 그래프를 먼저 읽는 일입니다. 콘텐츠가 아니라 청자의 인지가 먼저입니다.


관문 3 - 체감: 노드를 활성화하는 일

그래프에 노드가 들어왔다고 추론에 동원되는 것은 아닙니다. 안착한 노드와 활성화된 노드는 다릅니다. 이 차이가 "아, 알겠어"와 "아, 이거 나한테 필요하네" 사이의 거리입니다. 둘 사이에 있는 것이 체감입니다.

노드가 활성화되는 조건은 한 가지로 좁혀집니다. 그 노드가 받는 사람의 현재 문제 그래프 위에 올라가는 순간. 활성 부분 그래프(working subgraph)는 그가 지금 풀고 있는 문제, 마주한 마찰, 머릿속에서 굴리고 있는 질문들이 만듭니다. 이 부분 그래프에 새 노드가 끌려 들어가야 활성화가 일어납니다.

이 관점은 의학 교육의 Problem-Based Learning이 왜 효과적인지를 같은 언어로 설명해 줍니다. PBL의 구조는 단순합니다. 이론에서 문제로 가지 않고 문제에서 이론으로 갑니다(Manuaba et al., 2022). 학습자가 풀고 있는 문제 그래프가 먼저 활성화되고, 그 그래프가 새 개념 노드를 불러서 끌어옵니다. 같은 개념도 "이걸 알면 좋다"고 들었을 때와 "이걸 모르면 지금 이 문제가 안 풀린다"고 만났을 때, 활성화의 강도가 다릅니다.

좋은 데모, 좋은 무료 체험, 좋은 케이스 스터디가 거의 같은 구조를 갖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가치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받는 사람의 진짜 마찰 한 가지를 골라, 그 마찰의 활성 그래프 안으로 새 노드가 끌려 들어가는 순간을 만들어줍니다. 마찰이 풀리는 그 한 번이 활성화를 만들고, 활성화만이 다음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AI 학습에서도 같은 전환이 보입니다. 사실을 외우게 하는 학습보다 문제를 풀게 하는 학습(agentic RL, tool-augmented learning)이 더 강한 일반화를 만듭니다. 모델은 "이걸 알아라"보다 "이걸 풀어라"에서 깊이 학습합니다. 사람과 모델 모두에서, 노드를 활성 그래프 안으로 끌어들이는 쪽이 깊이 새겨집니다.

체감 설계의 핵심은 "더 많은 정보"가 아닙니다. 받는 사람의 활성 그래프에 한 번 결합해주는 작업입니다. 그 결합을 일으키려면 그의 현재 마찰을 알아야 합니다. 체감 설계는 콘텐츠 설계가 아니라 관찰 작업에 더 가깝습니다.


세 관문은 하나의 그래프 위에 있다

세 관문은 같은 그래프 위에서 순차적으로 작동합니다. 후킹이 슬롯을 열고, 이해가 그 슬롯에 노드를 안착시키고, 체감이 그 노드를 활성화합니다. 분리된 세 활동이 아니라 한 그래프 위의 세 단계입니다.

각 관문은 무너지는 방식이 달라 따로 설계해야 하지만, 어느 한 관문에서 끊기면 뒤따라오는 관문의 성과가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관문작업무너지는 방식
후킹빈 슬롯 열기너무 익숙해서 슬롯이 안 생기거나, 너무 낯설어서 노드가 분포 밖으로 밀려난다
이해슬롯에 노드 안착시키기받는 쪽 그래프에 닿는 엣지를 못 찾는다
체감노드 활성화받는 쪽의 활성 그래프와 결합되지 않는다

후킹에 자원이 몰리고 이해/체감이 방치되거나, 설명만 정교하고 슬롯이 처음부터 안 열리거나, 좋은 콘텐츠인데 받는 사람의 활성 그래프에 닿지 못해 잠든 노드로 끝나거나. 한 곡선으로 잇는 작업이 일의 전부입니다.


demand-driven에서 demand-constructing으로

성숙한 카테고리에서는 좋음의 판정 기준이 이미 환경에 깔려 있고, 사람들의 인지 그래프 안에도 그에 대응하는 부분 그래프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 안에서는 옛 마케팅 도구가 여전히 작동합니다.

새 카테고리에서는 그 기준 자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용자 인지 그래프에 해당 부분 그래프가 아직 형성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 상태에서는 어떤 신호도 신호로 인식되지 않습니다. needs가 발현되지 않는 이유는 사람들이 둔해서가 아니라, 좋음을 판정할 기준 그래프 자체가 아직 그들 안에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일의 정의가 바뀝니다. 새 카테고리의 작업자는 정보 전달자가 아니라 부분 그래프 공급자가 됩니다. 후킹은 새 부분 그래프가 들어올 슬롯을 엽니다. 이해는 그것을 기존 그래프에 잇습니다. 체감은 그것을 활성 그래프 안으로 끌어들입니다. 세 관문을 통과한 사람은 다음에 비슷한 것을 마주쳤을 때 좋음으로 인식할 수 있는 그래프를 이미 갖고 있게 됩니다. needs는 사후에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인식 구조가 먼저 만들어진 결과로 발현됩니다.

이것이 제가 시험 중인 가설입니다. 옛 언어로는 demand-driven이었던 것이, 새 언어로는 demand-constructing입니다. 카피와 캠페인의 일이 아니라 인지 온톨로지 설계의 일입니다.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