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alytical · 2026-05-17
AI 시대의 해자는 관찰이다
여행 플래너 에이전트를 만들려다 벽에 부딪혔다. 한국의 식당이 지금 영업 중인지, 주말에는 몇 시에 문을 여는지, 최근에 폐업하지는 않았는지. 이걸 알려면 결국 네이버 Place API나 카카오 Local API를 써야 한다. 아무리 뛰어난 LLM을 쓰더라도 이 질문에는 답할 수 없다. 추론의 문제가 아니라 관찰의 문제이
AI 시대의 해자는 관찰이다
여행 플래너 에이전트를 만들려다 벽에 부딪혔다.
한국의 식당이 지금 영업 중인지, 주말에는 몇 시에 문을 여는지, 최근에 폐업하지는 않았는지. 이걸 알려면 결국 네이버 Place API나 카카오 Local API를 써야 한다. 아무리 뛰어난 LLM을 쓰더라도 이 질문에는 답할 수 없다. 추론의 문제가 아니라 관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경험이 더 큰 구조를 보게 만들었다.
AI가 대체할 수 없는 것
AI가 잘하는 것들이 있다. 텍스트를 쓰고, 코드를 생성하고, 요약하고, 번역하고, 추론한다. 이런 능력들은 빠르게 commodity가 되고 있다. GPT-4가 할 수 있는 것을 6개월 뒤에는 오픈소스 모델이 비슷하게 해낸다.
그런데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지금 이 식당 열려있나?" "오늘 강남역 주변 교통 어때?" "이 아파트 실제 거래가가 얼마야?"
이것들은 추론의 문제가 아니다. 실세계를 관찰해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다. 누군가가 그 식당 앞에 가보거나, 실제 차량 데이터를 수집하거나, 실거래를 기록해야 한다. AI가 아무리 똑똑해져도 이 관찰 행위를 대신할 수 없다.
RAG(Retrieval-Augmented Generation)가 표준 패턴이 된 것도 이 한계를 시인하는 것이다. LLM만으로는 부족해서 외부 데이터를 검색해서 붙여야 한다. 그 외부 데이터의 핵심이 바로 관찰 데이터다.
관찰 데이터의 종류
관찰 데이터는 크게 7가지로 나뉜다.
물리 공간: 장소의 실존, 영업시간, 내부 사진. 네이버 지도와 카카오맵이 20년간 쌓아온 것.
이동·흐름: 실시간 교통, 배송 경로, 보행자 패턴. 카카오T가 수백만 건의 탑승으로 만들어낸 것.
인간 행동: 리뷰, 구매 패턴, 검색 의도. 실제 방문하고, 사고, 찾아본 사람들의 흔적.
환경·센서: 날씨, 대기질, 지진. 물리 센서가 있어야 측정 가능한 것들.
생체·의료: 의료 기록, 생체신호. 가장 강한 규제, 가장 강한 해자.
경제 활동: 실시간 가격, 재고, 결제. 실거래가 일어나야만 존재하는 데이터.
인프라: 전력 소비, 건물 센서. IoT 인프라가 있어야 수집 가능한 것.
이것들의 공통점은 하나다. 실세계에 presence가 있어야 얻을 수 있다.
AI 상용화가 역설적으로 관찰 데이터를 더 귀하게 만든다
모델이 commodity가 될수록 무엇이 남는가.
추론 능력은 평준화된다. 텍스트 생성, 코드 작성, 요약. 이런 능력들은 점점 누구나 쓸 수 있게 된다. 그러면 경쟁 우위는 어디서 오는가.
관찰 데이터를 가진 쪽이다.
네이버가 20년간 쌓아온 한국 로컬 장소 데이터는 GPT-5가 나온다고 해서 대체되지 않는다. 카카오T의 실시간 교통 데이터는 더 좋은 추론 모델로 만들 수 없다. 이 데이터들은 실세계 presence 없이는 절대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AI 기업들이 모두 비슷한 추론 능력을 갖게 될 때, 차별점은 어떤 관찰 데이터를 가졌느냐가 된다.
한국 시장의 구조
한국은 이 현상이 더 두드러진다.
구글 지도는 한국에서 네이버 지도를 이기지 못한다.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지도 데이터 해외 반출 제한 때문에 구글은 한국 지도를 1:25,000 스케일로만 서비스할 수 있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훨씬 더 정밀한 데이터를 갖고 있다.
이 규제가 역설적으로 한국 플랫폼을 보호한다. 글로벌 AI 기업이 아무리 좋은 모델을 만들어도 한국 로컬 관찰 데이터는 가질 수 없다.
이 flywheel이 20년간 돌았다. 글로벌 AI 기업이 따라잡으려면 물리적으로 같은 시간이 필요하다.
AI 스타트업이 마주하는 현실
한국에서 AI 기반 서비스를 만들려면 결국 이 플랫폼들의 API를 써야 한다.
여행 플래너: 네이버 Place API 없이는 한국 식당 데이터 없음. 배달 예측: 배민 데이터 없이는 수요 패턴 없음. 교통 기반 서비스: 카카오T 없이는 실시간 교통 없음.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의존이다. 문제는 플랫폼이 API 가격을 바꾸면 그 위에 쌓은 서비스 전체가 흔들린다. Reddit이 2023년에 API 가격을 50배 올렸을 때 수많은 서비스가 무너진 것처럼.
단기적으로는 API를 쓰면서, 장기적으로는 자신만의 관찰 데이터를 쌓는 전략이 필요하다. 사용자가 만들어내는 데이터, 서비스 운영 과정에서 생기는 데이터. 이것들이 결국 자체 해자가 된다.
결국 전략 자산은 무엇인가
"데이터가 새로운 석유"라는 말이 2006년에 나왔다. 지금 그 말을 다시 읽으면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모든 데이터가 석유가 되는 건 아니다. AI가 합성할 수 있는 데이터는 빠르게 가치를 잃는다. 하지만 실세계를 관찰해야만 얻을 수 있는 데이터는 AI 시대에 오히려 더 귀해진다.
전략 자산은 관찰이다. 실세계에 얼마나 가까이 있느냐, 얼마나 지속적으로 관찰하느냐, 그 관찰이 얼마나 다른 사람이 복제하기 어려운 곳에서 이루어지느냐.
AI는 추론한다. 하지만 관찰은 사람이, 센서가, 플랫폼이 한다. 그 관찰의 독점이 AI 시대의 진짜 해자다.
참고
- NFX. Data Network Effects.
- Stratechery (Ben Thompson). Aggregation Theory.
- a16z. AI and the moat question.
- Kakao Developers. Local AP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