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note · 2026-05-08
조용히 쌓고 있다 — 에이전트 스웜 시대의 일, 창업, 조직
AI로 일하는 사람들끼리 모이면 대화가 빠르다. 설명이 필요 없다. 누군가 "요즘 컨펌 기다리는 게 이상하게 아깝더라고요"라고 하면, 자리에 있는 사람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인다. "저도요"가 쌓이다 보면, 그게 개인의 감각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는 걸 알게 된다. 그런 자리에서 반복해서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설명하는 시
조용히 쌓고 있다
에이전트 스웜 시대의 일, 창업, 조직
들어가며
AI로 일하는 사람들끼리 모이면 대화가 빠르다.
설명이 필요 없다. 누군가 "요즘 컨펌 기다리는 게 이상하게 아깝더라고요"라고 하면, 자리에 있는 사람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인다. "저도요"가 쌓이다 보면, 그게 개인의 감각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는 걸 알게 된다.
그런 자리에서 반복해서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설명하는 시간에 이미 만들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만든 것들이 조용히 쌓이고 있다는 것.
이 글은 그 대화에서 시작됐다.
1. 시간을 쪼개지 않는 사람들
N잡러라는 말에는 오랫동안 같은 이미지가 붙어 있었다. 낮에는 본업, 밤에는 부업. 24시간을 쪼개서 복수의 소득원을 만드는 구조. 제약이 물리적이다.
해외에서,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핀란드 출신 개발자 Pieter Levels는 직원이 없다. 동시에 세 개의 서비스를 운영한다. AI 사진 생성 서비스 PhotoAI, 디지털 노마드 커뮤니티 NomadList, 원격 근무 구인 플랫폼 RemoteOK. 연간 수익은 3~5백만 달러다. Danny Postma는 AI 프로필 사진 서비스 HeadshotPro로 360만 달러 ARR을 솔로로 달성했다. Marc Lou의 ShipFast는 2024년 백만 달러를 넘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다. 에이전트가 실행하고, 자신은 판단한다.
마케팅 콘텐츠, 코드, 고객 응대, 분석. 이 실행의 상당 부분을 에이전트에 위임하고, 전략과 배포 결정에 집중한다. 역할을 시간으로 쪼개는 게 아니라, 에이전트로 병렬 실행한다. 솔로 창업자 비율이 2019년 23.7%에서 2025년 36.3%로 올라온 궤적과 이 흐름이 겹친다.
2. 스텔스 창업으로의 진화
이 병렬 실행의 구조는 어느 지점에서 창업으로 이어진다.
Stripe의 Collison 형제는 2009년 사이드 프로젝트로 결제 인프라를 만들기 시작했다. 경쟁자에게 알리지 않은 채 2년 동안 제품을 완성했고, 내놓았을 때 시장은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Notion은 공개 없이 개발하다가 Product Hunt, Hacker News, Twitter에 동시 공개했다. 48시간 만에 5만 명이 가입했다.
조용히 만들고, 준비가 됐을 때 나오는 방식. 이것이 스텔스 창업의 원형이다.
2024년에도 같은 패턴이 반복된다. 전 OpenAI 수석 과학자 Ilya Sutskever는 OpenAI를 나온 뒤 Safe Superintelligence(SSI)를 조용히 창업해 20억 달러를 조달했다. 밸류에이션은 320억 달러. 지금도 스텔스 상태인 Project Prometheus는 Jeff Bezos가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 제조업 AI 자동화 프로젝트다. 외부에 알리지 않고 움직이고 있다.
스텔스 창업이 소수의 전략이 아니게 된 건, 혼자 만들 수 있는 범위가 넓어졌기 때문이다. 에이전트가 팀의 역할을 대신할수록, 공개 없이 제품을 완성하고 검증하는 비용이 낮아진다.
3. 개인 에이전트 스웜 vs 조직의 프로세스
여기서 조직관리 관점에서 봐야 할 변화가 있다.
전통적 조직은 프로세스로 움직인다. 역할을 분리하고, 전문화하고, 표준화된 승인 체계를 거친다. 기획팀이 안을 내고, 개발팀이 구현하고, 마케팅팀이 배포한다. 컨펌 라인이 있다. 이 구조는 안정성과 품질 일관성을 보장하지만, 속도는 희생된다.
개인 에이전트 스웜은 다르게 움직인다.
조직이 한 번 컨펌 받는 시간에, 에이전트 스웜은 서너 번 반복하고 개선한다. 이 속도 비대칭이 축적되면 결과물의 차이가 된다.
문제는 이 둘이 이제 같은 시장에서 경쟁하는 상황이 생긴다는 점이다. 스타트업이 대기업과 경쟁하는 건 새로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개인이 에이전트 스웜을 갖추고 시장에 나오는 건 다른 종류의 위협이다. 규모가 아니라 속도의 경쟁이고, 거기서 조직의 프로세스는 구조적으로 불리하다.
조직 내부에서도 같은 긴장이 생긴다. Microsoft와 LinkedIn이 2024년 31개국 31,000명을 조사한 결과, AI를 쓰는 지식 근로자의 52%가 중요 업무에 AI 활용 사실을 의도적으로 숨긴다. 53%는 드러나면 대체 가능해 보일까봐 공유하지 않는다.
이 숨김의 반대편에는 다른 실행이 있다. 조직 안에서 쌓인 역량이 조직 밖의 에이전트 스웜으로 이어진다. 조직이 모르는 사이에, 조직이 키운 사람이 조직 바깥에서 더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Sam Altman은 2025년에 1인이 10,000인 규모의 기업에 해당하는 역량을 가질 수 있다고 했다. Anthropic의 Dario Amodei는 2026년 안에 1인이 10억 달러짜리 기업을 만들 확률이 70~80%라고 말했다. 이것이 과장이라 해도, 방향은 분명하다. 개인이 운영할 수 있는 에이전트의 역량이 팀의 그것에 수렴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4. 커리어에 대한 고찰
이 구조 안에서 커리어 경로를 어떻게 볼 것인가.
기존 경로는 선형이다. 기여 → 성과 인정 → 승진 → 보상. 수년의 사이클이 있고, 다수의 게이트키퍼가 존재한다. 이 경로에서 속도는 조직이 결정한다.
에이전트 스웜을 가진 개인의 경로는 다르다. 실행 → 시장 반응 → 반복. 사이클이 주 단위로 줄어들고, 게이트키퍼가 없다.
두 경로의 ROI를 비교하는 게 아직은 쉽지 않다. 조직 경로는 안정성과 네트워크를 제공하고, 에이전트 스웜 경로는 속도와 자율성을 제공한다. 어떤 가치를 우선시하느냐의 문제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해지고 있다. Microsoft의 Frontier Firm 분석에 따르면, 전체 기업 중 AI를 핵심 인프라로 운영하는 곳은 현재 9%다. 이 9% 안에 있는 사람과 밖에 있는 사람 사이의 역량 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커진다. 조직 안에 있더라도, 에이전트 스웜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역량을 쌓고 있는지 아닌지가 커리어의 분기점이 된다.
동료로서의 마음은 여전하다. 함께 좋은 서비스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다만 조직의 컨펌 라인 안에서만 움직이는 것과, 그 바깥에서 병렬로 실행하며 역량을 쌓는 것은 결과가 달라진다. 승진보다 에이전트 스웜을 설계하는 능력이, 더 긴 시계에서 커리어 자산이 될 수 있다.
마치며
조용히 쌓고 있는 사람들은 숨어 있는 게 아니다. 공개하지 않을 뿐, 내부에서는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AI 프로젝트를 하다 보면 그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설명 없이도 이미 체감하고 있는 사람. 격차를 아는 사람끼리는 설명이 필요 없다.
개인 에이전트 스웜이 조직의 프로세스와 경쟁하는 시대가 조용히 시작됐다. 이 변화의 속도는 아직 모두에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체감한 사람은 이미 다르게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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