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note · 2026-04

인상 없는 관념 — 에이전트 출력의 경험주의적 위상

Agentic Workflow가 팀에 도입되면 개인의 생산성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증가한다. 그 결과물을 함께 운영해야 하는 순간 벽이 나타난다. 이 벽의 이름을 흔히 속도 비대칭이나 소통 실패라고 부른다. 그런데 더 근본적인 진단이 있다. 경험주의 철학의 언어로 말하면: 에이전트는 인상(Impression) 없이 관념(

인상 없는 관념 — 에이전트 출력의 경험주의적 위상

요약

Agentic Workflow가 팀에 도입되면 개인의 생산성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증가한다. 그 결과물을 함께 운영해야 하는 순간 벽이 나타난다. 이 벽의 이름을 흔히 속도 비대칭이나 소통 실패라고 부른다. 그런데 더 근본적인 진단이 있다. 경험주의 철학의 언어로 말하면: 에이전트는 인상(Impression) 없이 관념(Idea)을 생산한다. 직접 경험에서 오지 않은 관념은 지식이 아니다. 그리고 사람이 읽지 못하는 문서는 — 에이전트가 수행할 수 있더라도 — 아무도 경험하지 않은 명제다.


1. 경험주의의 출발점

데이비드 흄은 인간의 모든 정신적 내용을 둘로 나눴다.

인상(Impression): 직접 경험에서 오는 것. 감각, 감정, 사건과의 접촉. 생생하고 강렬하다.

관념(Idea): 인상의 복사본. 인상이 희미해진 것, 기억과 추론으로 재구성된 것. 인상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흄의 핵심 명제는 단순하다. 모든 관념은 인상에서 온다. 인상이 없는 관념은 비어 있다. 현실과 접촉한 적 없는 추론은 그럴듯하게 보여도 검증된 지식이 아니다.

이것이 경험주의의 출발점이다. 그리고 이것이 Agentic Workflow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해하는 데 가장 정확한 렌즈다.


2. 에이전트는 경험하지 않는다

에이전트는 추론한다.

내가 오늘 겪은 고객 미팅, 팀 안의 긴장, 어제 실패한 실험의 감각 — 이것들이 나의 인상이다. 나는 이 인상 위에서 판단한다. 무엇이 중요한지, 어디가 위험한지, 이 방향이 맞는지. 그 판단은 내가 직접 경험한 현실과 연결되어 있다.

에이전트에게는 이 인상이 없다. 에이전트는 내가 전달한 텍스트를 처리한다. 텍스트 안에 담긴 맥락을 추론한다. 방대한 학습 데이터에서 패턴을 끌어온다. 출력은 논리적으로 정합적이고, 형식적으로 완성되어 있다. 그런데 그것은 내 팀의 실제 상황을, 오늘 회의에서 느낀 긴장을, 지난달 실패에서 얻은 감각을 경험한 적이 없는 주체가 만든 관념이다.

흄의 언어로: 에이전트의 출력은 인상 없는 관념이다.

이것은 에이전트의 결함이 아니다. 에이전트의 구조다. 인상은 경험으로만 얻어진다. 에이전트는 그 자리에 없었다.


3. 사람이 읽지 못하는 문서는 암묵지다

경험주의적으로, 지식이 되려면 누군가의 경험을 통과해야 한다.

문서가 만들어졌다. 에이전트가 처리할 수 있다. 파이프라인이 그것을 참조해 실행된다. 그런데 팀의 어떤 사람도 그 문서를 읽지 않았다. 어떤 판단도 그 내용과 접촉하지 않았다. 어떤 행동도 그것에 의해 바뀌지 않았다.

이 문서는 아무도 경험하지 않은 명제다.

사람이 읽지 못하는 문서는 암묵지다. 에이전트가 수행 가능하더라도. 형식은 명시적이지만, 기능적으로는 아무도 가진 적 없는 지식이다. 인상과 연결되지 않은 관념은 공중에 떠 있다.

존 듀이는 지식을 "탐구의 산물"이라고 했다. 탐구는 상황과의 접촉에서 시작한다. 문제가 있고, 그 문제와 씨름하고, 행동하고, 결과를 확인하는 루프. 이 루프를 통과하지 않은 것은 탐구의 산물이 아니다. 정보일 수 있고 텍스트일 수 있지만, 지식은 아니다.

에이전트가 만든 문서가 이 루프를 통과하게 만드는 것 — 사람이 읽고, 판단에 쓰이고, 결과와 대조되는 것 — 이 지식 생산의 조건이다.


4. 팀 안에서 관념이 발산하는 방식

사례로 들어가 보자.

사례 1 — 아무도 경험하지 않은 PRD

한 기획자가 에이전트와 함께 PRD를 만든다. 30페이지. 잘 구조화되어 있다. 리뷰 회의에서 팀원들은 권고안만 확인하고 승인한다. 문서 안의 전제 — 어떤 사용자를 우선했는지, 어떤 데이터를 기반으로 스코어링했는지 — 는 아무도 읽지 않았다.

개발이 시작된 뒤 전제가 틀렸다는 것이 드러난다. 에이전트가 처리한 인터뷰 데이터에 특정 사용자 집단이 과대표집되어 있었다. 팀원 중 누구도 그 PRD를 경험하지 않았다. 관념은 검토됐다는 착각 속에 현실과 접촉하지 않은 채 실행 단계로 넘어갔다.

사례 2 — 서로 다른 인상 위에서 만든 관념들

주간 전략 회의. 기획자는 에이전트가 분석한 경쟁사 데이터 위에서 말한다. 마케터는 에이전트가 처리한 시장 조사 위에서 말한다. 개발자는 에이전트가 평가한 기술 타당성 위에서 말한다.

각자의 에이전트는 각자가 입력한 서로 다른 맥락 위에서 서로 다른 관념을 만들었다. 회의실의 세 사람은 각자 다른 인상을 갖고 있고, 그 위에서 만든 관념도 다르다. 그런데 어느 관념도 공유 경험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수렴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것은 의견 차이가 아니다. 각자 다른 인상에서 추론된 관념들이 충돌하는 것이다. 공통의 경험 없이는 공통의 지식도 없다.

사례 3 — 실행되지만 경험되지 않는 파이프라인

한 팀원이 매일 아침 시장 동향 리포트를 자동 생성하는 파이프라인을 만들었다. 15페이지짜리 리포트가 매일 쌓인다. 파이프라인을 만든 사람을 제외하면 아무도 읽지 않는다.

파이프라인은 매일 관념을 생산한다. 그 관념들은 누구의 인상과도 연결되지 않은 채 축적된다. 이것은 정보 생산이 아니다. 경험되지 않는 관념의 누적이다. 듀이의 언어로 말하면: 아무도 탐구에 사용하지 않은 것은 지식으로 전환되지 않았다.

그 사람이 팀을 떠났을 때, 파이프라인은 남았지만 그것을 읽을 인상이 있는 사람은 없었다.


5. 발산은 왜 일어나는가

경험주의의 관점에서 발산의 구조는 명확하다.

지식은 공유 경험에서 공유 관념으로 이동한다. 같은 것을 경험한 사람들은 같은 방향으로 수렴할 가능성이 높다. 공유 경험이 없으면 각자의 관념은 각자의 인상에서만 출발한다.

Agentic Workflow는 이 공유 경험의 자리를 빼앗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다.

기능중심 조직이라면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비슷한 인상을 공유한다. 같은 종류의 실패를 경험하고, 같은 종류의 맥락을 마주한다. Nonaka가 말한 Socialization — 공유 경험을 통한 암묵지 이전 — 이 여기서 작동한다. 인상이 공유되면 관념도 수렴할 조건이 생긴다.

목적중심 조직에서는 구성원들이 서로 다른 종류의 인상을 가진다. 에이전트가 각자의 맥락 위에서 각자의 관념을 만들면, 공유할 공통 인상이 없다. 관념들은 서로를 모른 채 각자의 방향으로 쌓인다. 발산이다.


6. 관념이 지식이 되는 조건

경험주의적으로, 관념이 지식이 되는 조건은 하나다. 인상과 연결되는 것.

구체적으로 세 가지 접촉이 필요하다.

읽힘: 문서가 사람의 감각과 접촉해야 한다. 눈으로 읽히고, 이해되고,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것. 인간 가독성은 심미적 기준이 아니라 인식론적 기준이다. 읽히지 않는 문서는 인상과 연결되지 않은 관념이다.

실행과의 대조: 관념이 행동으로 이어지고, 그 행동의 결과가 관념으로 돌아와야 한다. 포퍼의 언어로: 반증 가능한 형태여야 한다. 어떤 결과가 나와도 영향받지 않는 관념은 지식이 아니라 신앙이다.

공유 기록: 한 사람의 인상과 접촉한 관념이 팀이 접근할 수 있는 형태로 남아야 한다. 경험은 개인에서 시작하지만, 팀의 지식이 되려면 다른 사람의 인상과도 접촉해야 한다.

이 세 조건을 에이전트 파이프라인 설계에 내재시키는 것 — 출력의 길이와 형식을 인간 가독성 기준으로 제어하고, 결과물이 실제 의사결정과 접촉하는 경로를 설계하고, 판단의 이력이 팀에 남는 구조를 만드는 것 — 이 에이전트 출력을 관념에서 지식으로 전환하는 설계다.


7. 다음으로 넘어가기 전에

여기까지 논의는 팀 안의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 이전, 사람과 에이전트 사이에서도 같은 구조의 문제가 반복된다.

나는 에이전트에게 맥락을 전달한다. 에이전트는 그것을 처리해 관념을 만든다. 그런데 나는 에이전트가 어떤 추론 경로를 거쳤는지, 어떤 전제를 채워 넣었는지 알지 못한다. 에이전트는 내가 전달하지 않은 맥락을 학습 데이터에서 채운다 — 내가 경험한 것이 아니라, 에이전트가 학습한 것으로. 그 결과물을 내가 검토하지 않은 채 다음 작업의 입력으로 넘기면, 나는 나의 인상과 연결되지 않은 관념 위에 새 관념을 쌓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과 에이전트 사이의 Grounding 문제다. 내 경험과 에이전트의 추론을 실제로 정렬하는 것. 에이전트가 만든 관념이 내 인상과 접촉하는 루프를 만드는 것.

다음에는 이 Grounding의 구조를 더 깊이 들여다보려 한다. 그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AI Native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물어볼 것이다. 단순히 에이전트를 잘 쓰는 것이 아니라, 에이전트의 관념과 나의 인상이 지속적으로 접촉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 — 그것이 Agentic Workflow를 업무의 구조로 내재화하는 방향이다.


참고